멋진 뒷모습을 위하여

여러분 혹시 사울이 처음 왕이 되던 때를 기억하세요? 
사울은 그 당시 잃어버린 나귀를 찾아 나섰다가 우연히 도착한 그곳에서 처음 왕으로 임명되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갑자기 왕이 된 그가 겸손했던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울은 점점 원래 가진 자신의 모습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원래 가진 천성적 기질인지, 아니면 환경이 가져다 준 모양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시작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마무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뉴욕에 살면서 여러 뒷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그 다양한 모습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뒷모습은 원래 그 사람이 가졌던 진정한 모습을 보기에 충분합니다. 
모든 것이 다 나오는 것이죠. 

사울은 다윗보다 훨씬 더 장점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그 강점과 장점을 살려내지 못하고 스스로 자기 자신을 그렇게 망가뜨려 갔습니다. 

저는 가끔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저 사람, 정말 장점과 강점이 많은데...”
“왜 정작 자신은 저렇게 모를까?”
“빨리 옛생활을 기억하고, 주신 은혜 곱씹으면서 겸손히 감당하면 더 크게, 더 놀라운 모습으로 은혜를 줄텐데...” 이렇게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울은 그렇게 결국 전장에서 죽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울을 보면서 깨달아야 할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최소한 미리 보여줬으니 사울과 같은 길은 걷지 말고, 같은 방법은 선택하지 말라’ 는 것입니다. 

내 뒷모습은 내가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뒷모습은 오늘 새롭게 시작하고 각오하고 기도하는 나의 결단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항상 주변이 중요합니다

누군가 하나님의 의도를 벗어나서 마음대로 살아갈 때,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영향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경 전체를 보아도 무너지는 사람들 주변엔 무너지게 만드는 환경과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 말은 무너짐과 실패의 원인이 다른 사람과 내가 처한 환경 때문이라고 몰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개인과 가족, 또는 민족에 나타나는 큰 문제는 앞에 누구도 그러한 그들의 삶을 지적해 주는 이가 없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우린 누구나 간혹 잘못된 판단과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점에서 주변에 나를 바로 잡아줄 한 사람만 있어도 전혀 다른 새로운 기회가 올 수 있다는 사실이지요. 

다윗이 궁지에 몰려 오갈 때 없을 때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무너져 갈 때... 그때도 <나단>선지자가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 대단한 다윗을 만들었던 것은?
다윗 자신도 중요했지만 오히려 주변에서 그를 도왔던 사람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삼손이 사사로서 그렇게 무너져 갈 때, 그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 민족 전체가 어떤 기준도 없이 <자기 좋은대로 생각하고 행동 했다>고 까지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솔모몬도 마찬가집니다.  
그렇게 지혜로 가득하고, 리더십이 강력했던 그 솔로몬도 서서히 무너져 갈 때, 역시 그를 도울 사람은 주변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린 항상 주변에 내게 꼭 필요한 그런 <영적 조언자>를 두고 무엇보다 내가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 부담감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유익에만 관심이 있다면

기복주의 신앙의 문제는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지만, 자기중심적으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자신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성경을 읽어도 자기중심적으로 읽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려는 것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자신이 듣기 원하는 말씀을 성경에서 찾아냅니다. 

 

우린 이것을 일명 단장취의(斷章取義)라고 합니다. 

즉, 남이 쓴 문장이나 글의 한 부분을 들어, 그 문장이나 내용이 가진 전체적인 뜻과는 관계없이 인용된 부분만을 이용하거나 그 인용으로 자기의 주장이나 생각을 합리화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기중심적으로 말씀을 받아들이고 적용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고 순종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이게 바로 '단장취의'입니다. 

 

준비된 주일이 아름답습니다

영적 세계의 일은 매우 민감합니다. 
토요일을 조금만 산만하게 보내도 주일예배에 집중하기 힘듭니다. 

주일예배를 온전히 드리려면 토요일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토요일에는 주일예배의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충분히 쉬어야 하고 늦은 밤까지의 TV 시청, 비디오 게임, 유흥 등을 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토요일에 시청했던 드라마, 게임의 화면 잔상들이 계속 주일에 이어지게 되고 예배에 집중할 수 없게 됩니다. 

또한 주일 예배를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한 주간을 돌아보며 회개와 감사의 제목을 생각하고 주님 앞으로 우리의 영혼을 집중해야 합니다. 

주일예배 참석하면 무조건 은혜받는 것이 아닙니다. 
토요일을 영적으로 깨어 준비한 사람만의 몫이 될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공급하시는 은혜는 하나님이 주시지만 그 은혜를 담을 그릇은 내가 준비해야 합니다. 

오늘도 예배를 통해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가득 담아가는 온세대 가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일을 위한 전쟁은 대개 토요일 밤에 승패가 결정됩니다. 
토요일 밤은 자기 성찰과 회개와 주일을 위한 기도의 시간으로 
따로 빼두어야 합니다.      - J.I. 패커 

 

기도와 주문

자동차를 타고 패스트푸드를 주문(Drive order)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니면 전화로 미리 주문하고 픽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경우든 내가 원하는 것을 주문합니다. 

하지만 내가 주문한 것과 다른 것이 나왔을 때 그런 경우 여러분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당혹스럽거나 혹은 불쾌해 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대개의 경우 다시 주문하거나 개선이 되지 않을땐 여러 방법으로 불만을 표시할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우린 기도에 대한 응답을 마치 이런 주문처럼 이해할 때가 많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기도 응답에 대한 반응들을 하나님 입장에서 이해할 땐 훨씬 더 당혹스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기도에 대한 응답...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쩌면 내가 주문한 것이 나오지 않을 경우...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요?
혹시 앞선 주문자의 모습처럼 불쾌하게 생각하거나 화를 내야 할까요?

글쎄요. 그래도 나는 음식점 주인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렵니다. 
그래서 나는 주문한 것을 픽업한 후에도 그 내용을 확인하지도 않고 그냥 가지고 오렵니다. 
심지어 내가 주문한 것과는 다른 것이 들어있더라도 불평하지 않으렵니다. 


그 이유는? 
나는 그분이 내게 가장 적합한 것이 무엇인지 아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내게 주신 것이 무엇이 되었든 그저 감사함으로 받으렵니다. 


우리 온세대 모두가 이런 주문자(기도자)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범사(凡事)에 감사하라!”는 뜻일 겁니다.(엡 5;20; 살전 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