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비판으로 비판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린 가끔 혹은 자주 누군가를 판단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개인 혹은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해서 우린 판단의 도구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목적이 아니라면 그것은 판단을 너머 비판이 됩니다.
비판하는 마음의 중심에는 자기를 의롭게 보이려는 교만이 숨어 있습니다.
비판받을 그 태도와 일이 과거 나의 모습일 수 있고 혹은 앞으로 언제 나타날지 모를 또 다른 나의 모습이 될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그러한 판단의 눈은 내 자신을 보는 것보다 훨씬 민감합니다.
즉 남의 허물은 나의 허물보다 더 잘 보인다는 뜻입니다.
또한 비판은 전염성이 강해 사람들의 생각을 혼란케 하며 관계를 어렵게 합니다.
비판적인 흐름이 계속되는 관계와 공동체는 와해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항상 긍정적인 말로 대화를 전환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연약함을 보게 되고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될수록 비판과 정죄가 아닌 중보기도의 제목으로 삼고 긍휼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어찌보면 그런 눈을 가지게 되었다는 궁극적인 이유와 목적은 하나님이 내가 그를 위해 기도하기 원하신다는 명백한 싸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하지 않고 비판만 할 때는 오히려 그 비판의 모습과 내용이 내 삶에 조용히 들어와 어느새 내 삶의 일부 혹은 전부가 되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에게 비판하라고 분별력을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중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오스왈드 챔버스-
God never gives us discernment in order that we may criticize,
but that we may intercede. -Oswald Chambers-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닙니다
우주가 유한한지 무한한지의 논쟁은 인류 역사상 가장 긴 논쟁 중의 하나였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이 문제는 고도로 발달한 현실 과학에서도 완벽히 풀어내고 있지 못합니다.
우주는 그래서 늘 우리에게 질문과 해답을 주기에 충분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오래전, 아인슈타인은 일반 상대성 이론, 즉 “물질이 존재하는 시공간은 휘게 되고(curvature of space), 이 휘는 성질 때문에 중력장인 만유인력이 생긴다”라는 주장을 통해 인류가 오랜 시간 고민해 왔던 우주가 유한하다는 해답을 주는 듯 했으나 오히려 더 애매한 궁금증만 남긴채 그 또한 역사의 흔적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늘 분명하게 우리에게 얘기해 왔습니다.
특별히 [히브리서 1장]에 기록된 ‘하나님께서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신다’는 말씀은 늘 현상은 발견하고 이론만 만들어내는 과학자들과는 다르게 그 근원(시작)과 원인이 무엇인지를 매우 정확히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끊임없이 누군가에 의해 관리되지 않으면 안되는 이 우주.
그래서 한치의 오차도 없이 태양계와 은하계, 그리고 그 이상의 영역을 붙드시고 유지하시는 그 영향력을 우린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 우연한 존재는 없습니다.
우연한 탄생도 우연한 유지도, 우연한 죽음도 없습니다.
이 땅의 모든 것은 그 시작이 있으며 그 과정이 있으며 목적이 있고 반드시 결과가 기다립니다.
저는 우리의 만남이 그 시작과 과정, 그 끝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멋진 만남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말씀이 선포되어야 교회입니다
인간의 육신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음식을 필요로 하듯이, 우리의 영혼도 영적 양식을 필요로 하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요, 이렇게 예배때 마다 공급되는 설교 입니다.
성경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는다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음식처럼 ‘먹는다’는 표현도 사용합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이 듬뿍 담긴 영혼의 양식이요, 우리의 영혼 구석구석 채워가는 영혼의 비타민과 자양분이기 때문입니다.
이 양식을 규칙적으로 섭취할 때 우리 영혼은 새 힘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규칙적이지 않은 말씀섭취는 결코 우리를 건강하게 할 수 없고 심지어 병이 들기까지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을 유지하게 하는 음식인 하나님의 말씀이 내 몸에 공급되도록 우린 의지적인 노력을 더해야 합니다.
때론 입맛이 없을 수 있고 바쁠 수 있고 심지어 귀찮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혼의 생명유지를 위해 이 과정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교회는 더 이상 정보나 관계성을 교류하는 친목단체가 아닙니다.
이미 그러한 기대감을 갖고 교회를 찾았던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필요와 욕구가 충족되고 교회를 떠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린 이 살아있는 영양분을 공급받기 위해 더욱 건강한 나, 건강한 교회를 꿈꾸며 함께 협력 해야 합니다.
말씀을 전하지 않는 교회에 가는 것은
음식을 제공하지 않는 식당에 가는 것과 같습니다. -스티븐 로슨-
Attending a church that does not preach the word is
like going to a restaurant that does not serve food. -Steven Law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