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를 타라

미국의 남가주 해변은 파도타기로 유명합니다. 산더미 만한 파도를 등지고 긴 터널을 빠져 나오듯이 파도를 타는 젊은이들을 보면 보는 사람의 마음이 후련할 정도로 정말 멋있습니다.

[파도타기]는 아이들이 즐기는 스케이트보드로부터 시작됐다고 하는데, 남가주의 많은 학교들은 파도타기를 아예 학과목으로 정해 놓았기에 많은 아이들이 파도타기를 배운다고 합니다. 

파도타기를 할 수 있는 파도의 종류를 식별하는 법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을 배웁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파도를 만드는 법’은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파도는 하나님만이 만드실 수 있습니다.  
이 말은 파도와 같은 문제도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아니면 결코 일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때, 문제의 해결도 하나님이 하실 거라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 아닐까요?

또한 결국 파도를 타려면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인생의 파도타기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파도가 밀려올 때 우리는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내게 파도를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게 기적을 베풀어주시려고 이 파도를 주신 것을 압니다.  하나님 저로 이 파도에 침몰치 않게 하시고 오히려 이 파도를 타고 즐길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라고 말이죠.

오늘도 내 인생에 파도와 같은 문제가 다가와도 멋지게 파도를 타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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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가 밀려올 때

20세에서 50세까지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웃음에 관한 생활 스타일을 조사했더니 하루 평균 10회 웃는답니다. 
심지어 웃는 시간을 알아보니 이는 1회당 8,6초 세상에 하루평균 90초 밖에 웃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와는 정반대로 걱정과 근심의 시간은 하루 평균 3시간 6분 동안 지속되고 여성이 3시간 30분, 남성은 2시간 30분 정도 걱정과 근심의 시간으로 채워간답니다. 

또한 이를 연령별로 구분해 보니 20대 청년이 제일 근심이 많은 3시간 15분, 그리고 30대가 3시간 7분, 40대는 2시간 50분이 나왔습니다. 

위 통계들을 볼 때, 사람들의 웃음과 근심의 시간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차이를 보입니다. 
물론 그만큼 웃을 일이 없고 근심과 고민스러운 일이 더 많다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요14:1) 라고 말입니다. 

이 말씀은 근심과 염려는 결코 우리의 의지로 선택해야 할 문제가 아닌 하나님의 명령과 강력한 선포로 '포기'해야 하고 접근해서는 안되는 감정이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걱정, 근심, 염려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것은 오직 하나 그 문제를 하나님께 말하고 쏟아 부으며 하나님이 이루시도록 기대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빌립보서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진짜문제와 가짜문제를 분별하는 지혜

믿음의 사람은 나를 자극하는 <세속적인 말>엔 집중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말 때문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볼때 다윗은 참 긍정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감성은 풍부했지만, 결코 감정적이진 않았습니다. 


심지어 훗날 사울이 자신을 이유 없이 죽이려 할때도 그냥 피하는 방법을 선택하고 형들을 위로하고 심부름을 위해 전장에 찾아 온 막말을 한 큰 형 엘리압의 섭섭한 소리에도 반응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 사명을 잘 감당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엘라골짜기]에서 이미 40일 동안이나 싸우진 않고 앞에 나와 떠들어 대기만 하는 [골리앗]을 그때 처음 보았을 때 그때 다윗의 반응은 이전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즉, 적장 골리앗의 말(저주)이 다윗을 자극합니다. 
육신의 언어(말)... 즉 나를 [자포자기]하게 만드는 그런 말에는 반응하지 않았지만, 영적 도전 앞에선 다윗이 참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골리앗이 어떤 사람입니까?
일단, 키가 거의 3미터(10ft) 정도 됩니다. 
입은 갑옷의 무게만 60kg(130 LB), 그리고 골리앗이 들고 있는 창의 무게만 6kg(13 LB)이나 됩니다. 

문제의 조건으로 이해하자면 골리앗 외에 다른 문제들은 문제도 아닙니다. 


하지만 다윗은 오직 골리앗의 도전에만 반응합니다. 
다윗은 사울과 형들의 비난엔 반응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신뢰하는 하나님과 사랑하는 백성들을 향한 맹렬한 비난은 참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의로운 분노는 다윗을 다윗되게 만드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다윗의 입지를 분명히 하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첫단추가 됩니다. 

문제 앞엔 용기있게 맞서야 합니다. 
하지만 필요없는 감정 싸움은 피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 문제와 가짜문제를 분별하는 지혜입니다. 

 

달팽이의 꿈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이 다른 누군가에겐 상상할 수 없는 노력과 도전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우연히 길을 걷다 보게 된 우리 동네 민달팽이, 1미터도 채 안되는 그 좁은 길목을 횡단(?)하는데도 달팽이에겐 엄청난 수고와 노력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살다보면 마치 내가 이 민달팽이 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죽기살기로 살아왔는데 도무지 어떤 업적도 보이지 않고 심지어 마치 그자리에 그대로 있는 듯 보여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각자의 분량대로 허락하신 모습이 있습니다. 
우리가 볼 때는 그것이 비록 민달팽이 처럼 느리고 더딜찌라도 그런 민달팽이도  매일 매일 자신에게 주어진 분량만큼 만족하며 그것에서 주는 기쁨과 감사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아주 오래 전, 모든 인류가 하나님을 멀리하고 무시하며 살고 있을 때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 [방주 프로젝트]를 지시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그 방주에 들어가서 자신의 생명을 보존해야 할 책임과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모르긴 해도 그때도 분명 이 민달팽이의 조상은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정말 힘겹고 어려운 그 한걸음을 시작하고 누군가에겐 너무나도 쉬운 그 걸음을 평생을 걸쳐 이뤄냈을지 모릅니다. 

우리가 함께 하는 이 신앙생활은 마치 장거리 경주와 같습니다.
장거리에는 ‘순발력’보다 끝까지 완주할 수 있는 ‘지구력’이 필요합니다.
시작했으면 끝까지 변함없는 태도와 성실한 태도로 달려야 합니다.

방주에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 결코 멈춰선 안됩니다. 


끝까지 변함없이 가다보면 우리도 달팽이도 그 꿈을 이루고 반드시 그 목적을 이루어 그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