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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 다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성경에서 예수님을 만난 부자 청년은 자신의 재물을 팔아 가난한 자들을 위해 내어놓을 수 없었습니다. 
이유는 겉으론 영원한 생명을 바랬지만, 실제는 늘 재물의 힘을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재물이 그의 가장 소중한 가치이고, 안정감이며, 소망이었습니다. 
영생의 삶 보다 움켜쥐고 있는 재물이 더 매력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영생을 얻고자 했지만 현실이 주는 달콤함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부분을 간파하신 것입니다. 
세상엔 부유하면서도 하나님을 전인적으로 만난 사람들도 많습니다. 
물론 우린 대부분 그러한 모습을 상상하고 기대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둘 중 하나가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래서 재물의 문제 때문에 심지어 하나님을 포기하는 경우도 매우 흔하게 만납니다. 
이런 경우 둘 다 이룰 수 없는 삶이 되며, 오히려 더욱 비참한 모습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하나를 얻기 위해 분명 하나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둘 다 갖고 싶다면?
"지금 나는 어떤 것을 더 사랑하는가?" 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할 수 있어야 하고, 정기적으로 점검 받아야 합니다. 

비단 그것이 재물이 아니라, 또 다른 어떤 것이라고 해도 하나님 보다 더욱 앞서거나 우선이 될 때...
결국 그것은 그것 자체를 선택하는 삶이 '영적 파산자'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두 개 다, 혹은 세개 다 가질 수 있을까요?
답은 이미 지금 당신의 삶에서 충분히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온세대 가족들 안에 이러한 모든 것들을 다 가지고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열정과 집중력이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끝까지 유지하고 누리는 삶이 많이 나타나기를 소망합니다. 

두 개 다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기본기가 중요합니다

운동을 할 때도, 공부를 할 때도 심지어 직장생활과 가정생활 전반에 걸쳐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해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바로 기본기 입니다. 

아무리 능수능란 해도 기본기가 탄탄하지 않으면 일의 효율이 떨어지고 필요이상의 힘을 소진하게 됩니다. 

 

믿음생활도 마찬가집니다. 
무언가 특별한 것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을 잘해야 합니다. 

기본을 붙잡고, 기본을 지키고, 기본에 생명을 거는 것입니다. 
그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신앙생활의 기본은 말씀과 기도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최선의 방법이므로 말씀 읽기에 집중하여 말씀을 체질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세상에 나타나게 하는 채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기도는 항상 붙들어야 하는 믿음의 기본기입니다.

기본기에 충실해야 더 큰 일을 기대할 수도 있고 열매를 맺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또 읽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작은 것이 사람의 많은 것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 존 번연  
Pray and read, read and pray; for a little from God is better 
than a great deal from men.
                                                                           - John Bunyan

기본기가 중요합니다

믿음의 정원은 내가 가꿔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믿음은 내 스스로가 나로부터 끄집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믿어지는 그 순간이 옵니다.

저는 이 점에 참 감사함을 느낍니다.
만약 우리가 믿은 이 믿음이 우리로부터 우러나온 선한 의지라면?.... 
이 믿음 자체를 또 얼마나 [자랑]하겠어요?

▶ 우리로부터 끄집어낸 믿음은? 
고작 한 두사람의 말에 모든 것 다 없던 일로 하고 조용히 사라지는 수준밖에 안됩니다. 
▶ 어제까지 ‘뼈를 묻겠다느니...’ ‘당신밖에 없다느니’ 아무리 호언장담해도 하루아침에 안개처럼 사라져 버리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가 어떻게 믿어갈 것인가?” 하는 문제까지 핸들링 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로 은혜의 자리로 인도함 받았다면? 
그때부터는 우리 자신의 몫이 됩니다. 

믿음을 만들어 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 주신 믿음을 우리 스스로 가꾸고 더욱 키워갈 능력은 충분히 주셨습니다. 
얼마든지 할 일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지로 그 믿음 시작할 수 없었지만, 유지하고 가꿔갈 책임은 우리 각자에게 맡기셨다는 것입니다. 
성경 곳곳엔 그러한 믿음을 위해 반드시 우리가 기억해야 것들을 충분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제 그 믿음, 
가꿔가야 할 책임은 각자에게 있습니다.

믿음의 정원은 내가 가꿔야 합니다

하나님의 헤세드를 만나다

시편을 읽다보면 자주 만나는 단어가 있습니다. 
간혹 우리가 보는 개역개정 성경엔 [인자하심]이라고도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18편)” 라고 말이죠. 

그런데... 이 뜻이 구약성경이 기록된 <히브리어>로는 우리에겐 너무도 익숙한 단어인 [헤세드]입니다. 

특별히 이 단어는 인자하심, 사랑, 은혜라는 뜻이 동시에 있지만, 보통 사람들끼리는 결코 사용할 수 없는 단어입니다. 
왜냐하면? 이 단어는 반드시 [영원하다]라는 단서가 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린 순간적으로 인자할 순 있으나 영원히 인자함을 유지하기 힘듭니다. 
우린 은혜를 베풀 수 있지만, 상대방의 태도에 따라 내 기분에 따라 바뀔 수 있습니다. 
심지어 죽도록 사랑해서 결혼을 해도 서로 죽기살기로 싸우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린 이 단어를 우리의 삶에 절대로 적용할 수 없는 것이죠. 

오직 하나님만 영원하시고, 변함없는 그 속성(사랑/은혜/자비하심/인자하심)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고 계신 것입니다. 

물론, 성경 곳곳엔 하나님께서 끝까지 인자하시지 않고, 지속적인 은혜를 베풀지도 않고, 심지어 사랑하지 않아서 징계를 부으실 때도 많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그 <변화적 선택>은 단순히 당신의 기분 문제가 아닙니다.
오직 우리의 안전과 평화, 그리고 선한 계획을 이룰 수 없는 것에 대한 <반대적 선택>일 뿐입니다. 

우리의 변화는 내 기분, 상대방과의 관계에 집중되지만, 하나님의 변화는 항상 우리를 위한 변화요, 선택입니다. 
그래서 우린 오늘도 그 헤세드 때문에 존재하며, 헤세드 때문에 새로운 기회를 얻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변함없는 하나님의 헤세드를 날마다 기억하며 그 헤세드의 인도하심과 공급하심을 기대하는 한주가 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헤세드를 만나다

하나님의 잔소리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최상의 상태, 가장 멋진 모습은? 
하나님의 계획에 내가 노출되고, 그 계획대로 순종해 갈 때 입니다. 

하지만 늘 변하기 쉽고, 무너지기 쉬운 우리를 염려하시는 하나님은 가장 결정적인 시기에 뭔가 지속적이며 반복적인 메시지를 던져주신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토록 메시지를 반복하실까요?
그것은,  지나간 믿음의 선배들의 패턴이 대부분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다윗에게 일명 잔소리(?)를 퍼 부으실 때도 다윗은 가장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을 때였으며 그의 아들 솔로몬도 위대한 사명 [성전건축]을 모두 이루고 난 다음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렇게 자주 당신의 염려를 드러내실까요? 왜 잔소리를 하실까요?
그것은 누구나 뭔가를 이룬 후에 다가올 <영적 무장해제>와 각자의 연약한 기질이 꿈틀거리기 쉬운 때가 바로 그 때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하나님의 잔소리는 곧 뭔가 이루어지기 전이나, 이룬 이후에 주시는 소중한 잔소리 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이미 누리고, 가진 좋은 것들을 오래 오래 간직하며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잔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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