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무리입니까? 제자입니까?

미혹은 ‘빗나갔다’라는 뜻으로, 하늘의 별들은 모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기 자리를 지키는데 밤하늘에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유성을 미혹의 상태로 설명합니다. 

미혹된 사람들의 상태는 마치 이와같이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 시대를 보면 군중들은 언제나 모였다가 떠났다를 반복하였습니다. 

그들의 중심에는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중심적으로, 자기의 필요와 목적에 따라 예수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떡을 찾았던 군중들은 떡이 주어지지 않으면 떠났습니다. 
항상 그렇게 뭔가 얻어내려는 의지 밖에 없었습니다. 

성경은 이들에 대해 한 번도 '제자'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저 ‘무리들’이라고 불렸습니다. 

우린 지금 무엇을 따르고 있습니까?
무엇을 위해 따르고 있습니까?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 보다 자신의 기호에 맞추어 필요한 것을 채우는 이기적인 신앙이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무리입니까? 제자입니까?

여전히 불안한 이유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연약하기 때문에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고 걱정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내일을 알지 못합니다. 
한 치 앞도 모릅니다. 
그래서 더욱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임에도 삶에 대한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에 짓눌려 있다면 가장 큰 원인은 불신앙입니다. 우리가 걱정과 불안을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는 이유는 나는 체감하지 못하지만 본질적으로 교만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자리에 내 자신이 앉아 있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 되어있기에 하나님께 직접적으로 불안과 걱정을 맡기지 못합니다. 

신앙은 '위탁'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삶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맡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떠넘기고 우리의 책임을 피하는 것과는 분명 다른 것이어야 합니다. 
내 지식과 경험과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수많은 것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전적인 신뢰에서 오는 그런 맡김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무엇보다 <훈련>해야 합니다.
그것도 늘 반복적으로 말입니다. 

여전히 불안한 이유
나귀턱뼈에 목숨걸지 맙시다

나귀턱뼈에 목숨걸지 맙시다

삼손을 통해 도전받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말을 마치고 턱뼈를 그 손에서 내어던지고 그곳을 라맛 레히라 이름하였더라”(삿15:17)는 말씀입니다. 

그 나귀턱뼈는 어떤 것입니까?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생명을 지켜준 그 무엇입니다. 혼자서 일천 명을 쓰러뜨리게 했던 그 무엇입니다. 
그렇다면 나귀턱뼈는 지금 삼손에게 있어서 가장 귀하고, 자랑스러운 기념비적인 그 무엇입니다.

이를테면 면류관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런데 삼손은 그것을 던져버립니다. 미련 없이 멀리 던져 버립니다. 
‘내가 비록 이 나귀턱뼈를 사용하여 천명을 쳐 죽였으나, 승리의 궁극적인 원인은 이 나귀턱뼈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이었다.’는 것을 나귀턱뼈를 던지는 것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오늘이 있게 한 나귀턱뼈는 무엇입니까? 
지금 손에 꽉 쥐고 자랑스럽게, 소중하게 생각하는 나귀턱뼈는 어떤 것입니까? 
‘이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데, 또한 내 노후, 내 자녀, 내 남은 생애를 위해서 얼마나 소중한 것인데’하며 꽉 붙잡고 있는 나귀턱뼈, 그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나귀턱뼈는 나귀턱뼈일 뿐입니다. 
그것이 나의 오늘이 있게 한 것도, 또한 내 미래를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보잘 것 없는 뼈다귀에 불과합니다. 


오직 하나님이 나의 오늘이 있게 하셨으며, 그 자리에 오르게 하셨고, 그것을 누리게 하셨고, 그 면류관을 쓰게 하셨습니다. 나귀턱뼈 때문이 결코 아닙니다.


나귀 턱뼈에 목숨거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예리한 칼날

예리한 칼날

오래전 동네 저가 생활용품 매장에 갔다가 ‘5불’이라는 환상적인 가격의 면도기를 구입했다. 

남성 면도기가 원래 그리 싸진 않지만 이번만은 괜찮겠지 생각하며 집어들었다.
그리고 기대반 걱정반 아침에 면도를 하려는데 ...아뿔싸~
세상에... 아무리 밀어도 면도가 되지 않는다.

그래도 명색이 칼날인데 이렇게 안나가서야 어찌 쓰란 말인가!

이건 완전히 돼지털 하나 못 깎을 하찮은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면도기는 어디 다른 곳에 대용할 수도 없는 매우 무익한 것에 지나지 않다는 생각과 나 또한 모양만 면도기인 이 제품처럼 아무런 영향력도 없는 성도의 삶을 살지 않도록 다짐해 본다.

기능성을 갖춘 것 같은 모양은 중요하지 않다. 
모양이 다소 어눌해도 그 기능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오늘도 겉모습만 치장하지 말고 내면의 진정한 영향력인 그 날을 갈자.

오늘도 은혜의 날을 갈자. 
무디고 무뎌 아무것에도 쓸모없는 그런 날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날 선 그 예리한 칼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4:12)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