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믿음이 진짜일까?

우리의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테스트를 해봐야 알 수 있습니다. 

가짜 신앙은 고난과 같은 시험이 오면 급히 무너지지만 참 신앙은 오히려 더욱 빛이 납니다. 
물론 순간 무너진 나의 모습에 상심하고 낙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고난이 나의 고백과 믿음을 잃어버리게 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오히려 나의 믿음을 확실케 하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고난이 신앙을 빼앗아 갈 수 없고 오히려 믿음을 자라게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처음에는 모두 쭉정이같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다 도망갔습니다. 
온전한 제자로 세워지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믿음의 길에 들어섰으면 혹독한 시련의 길을 통과해야 합니다.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는 신앙이 진짜입니다. 

그래야 마지막 때 하나님의 타작마당에서 알곡으로 분류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합당한 그릇

하늘로부터 은혜 주시겠다고 상상할 수 없을만큼 가득 주시겠다고 분명히 약속해 주셨는데…
문제는 이 마음의 그릇이 요모양이라~ ㅠㅠ

그래서!!!
비록 지저분해도, 아무리 지난 과거가 화려해도(?) 이 녀석을 씻기어 그 은혜 경험케 하시려고 평생 지저분한 쓰레기통과 같은 삶에서 그 은혜를 경험하고 받고 누리는 통으로 우리 모두를 다시 불러 주셨습니다.
 
우린 각자 하나님께서 이런 저런 모양으로 부르셨습니다. 
물론 그 모양대로 쓰임을 받는다지만, 그래도 얼마든지 우린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새로운 기회를 붙들 수 있는 선택은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담고 계십니까?
무엇을 담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하나님이 마음껏 담아 쓰시기에 편안한 그런 멋지고 튼튼하고 큰 그릇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중간지대를 꿈꾸지 않나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 절대로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믿음은 선택의 문제입니다. 
어느 쪽에 설 것인지 입장을 정확하게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 편에 설 것인지 아니면 세상 주관자 쪽에 설 것인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이것도 선택하고 저것도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이건 이것대로 좋고 저건 저것대로 좋으니 둘 다 가지면 어떨까? 생각하지만 신앙과 믿음, 하나님의 자녀라는 위치에서 우린 절대로 어중간한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편인가, 세상 편인가? 

원하는 것이 ‘구원’인가, ‘세상의 재물과 성공’인가? 
주님께 영광 돌리겠는가, 세상의 칭송을 받겠는가? 
신앙의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내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중간지대에서 방황하고 머뭇거린 삶이었다면 이제는 매우 명확한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보다 더 멋진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믿음과 감정

믿음과 감정은 구분되어야 합니다. 

기쁘고 행복한 감정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는 아닙니다. 

반대로 불안하고 고통스러우며 처절한 감정들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증거도 아닙니다.

믿음은 홍해가 갈라지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며 흥분하는 것과 같은 어떤 특별한 감정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디가고 답답하게 느껴져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결코 우리의 감정이나 느낌을 무시하지 않지만, 그것이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기에 때로는 아무런 느낌이 없어도 말씀을 의지해서 행동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역사는 오감을 통한 감정, 느낌을 의지할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나아갈 때 일어납니다.